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바라 왕국 (문단 편집) === 프랑스에 흡수되다 === 호아나 3세 사후 아들 '''[[앙리 4세|헨리케 3세]]'''가 나바라 왕위에 올랐다. 그는 나바라 왕국을 근거지로 삼고 위그노들의 지지를 받으며 1587년부터 1593년까지 [[위그노 전쟁]]을 치른 끝에 [[앙리 3세]]의 암살 이후 지리멸렬해진 반대 세력을 격파하고 파리에 접근했다. 그는 대다수가 가톨릭 교도인 파리 시민들에게 왕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1593년 7월 25일 프랑스 국왕들이 묻히는 [[생 드니 대성당]] 앞에서 서서 >'''"파리는 [[미사]]를 드려서라도 가질 가치가 충분하다"'''(Paris vaut bien une messe) 라고 외친 뒤 가톨릭으로 원복했다. 그 후 가톨릭 교도와 위그노 모두에게 프랑스 왕으로 인정받으면서, 그는 200여 년간 이어질 [[부르봉 왕조]]를 개창했다. 1610년 헨리케 3세가 암살당하고 장남 루이스 2세(프랑스의 [[루이 13세]])가 나바라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. 1620년 나바라 왕국은 폐지되고 프랑스 왕국에 합병되었다. 그래서 나바라 왕국은 사라지고 대신 '프랑스와 나바르의 왕'으로 프랑스 왕위에 따라붙는 부가적인 칭호로만 남았다. 그리고 [[프랑스 혁명]] 시기 [[루이 16세]]의 칭호가 '프랑스와 나바르의 왕'에서 '프랑스 국민의 왕'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흔적조차 없어져 루이 16세를 끝으로 소멸했다. 그 후 [[루이 18세]], [[샤를 10세]]의 복고 왕정 시기에 잠시 부활했지만 [[루이필리프]]가 다시 '프랑스 국민의 왕'을 칭호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소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